고영호(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 정책실장)
엉겁결에 참교육 학부모회 지부장이 되고 정신없던 2008년 초, 처음으로 학부모 상담을 했다. 고입 연합고사에서 떨어진 학생을 둔 어머니는 같은 점수를 받은 다른 아이는 합격했는데, 자신의 아이는 집이 가난해서 떨어졌다고 얘기하면서 도와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쪽저쪽으로 확인해 보니 그 어머니의 오해가 분명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서 고의로 차별받는다는 어머니의 사연은 절절했다. 어머니는 여유가 없어 아이 공부를 지원해 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아이의 성적은 떨어져서 일반계 학교 지원이 어려웠다. 하지만 대학을 나와야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어머니는 무리해서 연합고사를 보게 했는데 그만 아이가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의 오해였다고 상담하면서도 이처럼 가난한 부모가 아이 교육에서 겪는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무거운 생각은 내내 떠나지 않았다.
상담을 하던 3월 초,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되었다. 그 후 2년간 수십 명의 파면, 해임 교사를 낳은 ‘일제고사’의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이 시험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몇 십분 정도는 술술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참 만만치 않았다. “학생이 공부를 하면 시험을 봐야 하고, 시험을 봤으면 등수가 나와야 하고, 기왕이면 전국적인 등수가 나오면 더 좋을 것이다.”라는 얘기는 학부모들에게 일종의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일제고사’로 교사와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서 공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교육당국의 목표에 많은 학부모들은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가정 형편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 삶의 가능성이 정해져버린 아이들이 태반인 교육현실에서 ‘경쟁’이 교육을 얼마나 왜곡시킬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래저래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다. 정부가 추구하는 ‘시장과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의 본질과 근원을 해석하는 자료를 이것저것 읽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에서 출발했다는 글을 보며 내가 너무도 몰랐구나하며 한숨을 쉬었고,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시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은 꾸준히 추구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거야?”하고 생각하다가 정책 입안자들이 하나같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례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미국의 교육정책에 관련된 자료를 찾았다. 연방국가답게 각 주마다 교육제도와 정책이 다르고, 인종과 민족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차별로 인해 학교가 처한 현실이 우리와 너무 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초중등학교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듯이 자유와 가능성이 넘치는 곳이 아니었다. 가난한 지역의 고등학교는 학생의 70% 이상이 졸업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고, 이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학교를 학교기업에 위탁하고, 그래도 안 되면 폐쇄하고, 전체 학교를 평가하기 위해 일제고사도 도입한다. “역시 신자유주의 나라 미국이야.” 라며 컴퓨터를 끄려고 했더니 이러한 교육정책의 원조는 영국이라고 한다. 신보수주의의 원조 대처를 떠올리며 “그래 그 놈들이 망쳤겠구나.”하며 자료를 찾아본다. 역시나 대처정부 시절 ‘일제고사’, ‘교원평가’, ‘단위학교 책임경영’ 등의 교육정책을 도입하면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완성하였다. 영국의 대처에서 미국의 부시로, 그리고 한국의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발견하면서 보수 우익에 의해 망가진 교육정책으로 결론지으려던 순간 또 다른 충격이 다가왔다.
1980년대 영국 보수당 대처정부가 입안한 교육정책의 기본 아이디어가 우리 기준으로 좌파정당이라 할 수 있는 그 이전 노동당 정부 시절에 있었다는 사실이고, 1997년 노동당이 재집권한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1976년 노동당 집권 시절에 영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우리도 겪었던 것처럼 국가부도 위기에서 근본 원인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다. 이때 노동당 정부는 영국 교육의 경쟁력 약화를 근본 원인으로 진단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 간 교사 간 경쟁 정책을 고민한 것이다. 이것이 1980-90년대에 보수당 정부에서 완성되었다. 이것은 “그러니 나라도 엉망으로 만들고 정권도 잃었겠지.”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왜 1997년 20년 장기집권의 보수당을 이긴 노동당 정부에서도 ‘시장과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은 변화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노동당의 토니블레어의 총선 공약은 “(영국 정책 가운데 세 가지 우선순위는)첫째는 교육이고, 둘째도 교육이며, 셋째도 교육이다.”였을 정도로 교육을 최대 정책과제로 삼았는데 말이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보았던 책이 <위기의 학교(School Report)>이다.
<위기의 학교>는 닉 데이비스란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중도 좌파 일간지인 <가디언>에 연재했던 학교 현장 보고서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신문에 연재한 글이라서 매우 사실적이고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해서 읽기가 편하다. 또한 영국의 교육환경이 우리와 많이 다른 점을 감안해서 옮긴이의 주석이 자세히 달려있어 무척 친절한 느낌이다. 하지만 숲 탐방에서 나무와 꽃 이름 아는 것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칫 숲의 기운을 놓칠 수 있는 것처럼 책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을 좀 길게 늘어놓았다.
‘경쟁’은 한국 사회를 성장시켜 온 핵심어 가운데 하나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과거 민주정부 시절에도 ‘시장과 경쟁 만능의 정책’을 교육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풀기 위한 노력은 진지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시장과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짊어지게 된다. 닉 데이비스는 <위기의 학교>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교육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의 참상’을 전하며 ‘교육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한다.
닉 데이비스가 학교 현장에 발을 딛고서 던진 질문을 우리나라에 한번 적용시켜 보자. 우리는 가난이 학교교육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언론은 이런 주제에 대해 탐사 보도 한 번 제대로 내보내지 않으며, 제대로 된 연구보고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운동, 교육운동 내에서도 빈곤과 교육의 문제를 끈질기게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할 따름이다. 물론 이것은 학부모 운동을 한다는 내게도 해당되는 얘기이다.
닉 데이비스의 책을 보면, 영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규율 해이와 무단결석을 큰 문제로 삼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어떨까? 학교와 학원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파리하게 시들어 가는 대부분의 중고교 학생들은 어서 빨리 19세를 넘겨서 이 지긋지긋한 ‘교실감옥’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은 학교 규율은 그냥 따라 주는 척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동시에 지식에 대한 호기심, 사람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한 기쁨, 자기 능력을 발견해 나가는 경외감에서 자신을 완벽히 차단한 채 무기력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으로 스스로를 은닉한다. 닉 데이비스의 글에는 네덜란드의 한 교수가 “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응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닉 데이비스가 우리나라에 취재를 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할까? “한국에서 모든 학생들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무기력이라는 보호막 속에 감추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때문에 심란한 많은 사람들이 2MB 교육의 원조인 영국의 교육을 다룬 이 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같이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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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위기의 학교(School Report)
지은이 : 닉 데이비스
옮긴이 : 이병곤
출판사 : 우리교육
출판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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