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올해는 국회의원 총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 1987년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 이어졌던 정치역정만큼이나 역동적인 해이다. 1987년에는 ‘민주화’라는 큰 방향이 있었고 권위주의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있었다. 87년 대선과 88년 총선은 이런 열망을 실현시킬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선거였다. 물론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선거 결과가 시민들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민주화라는 큰 흐름에 대해 어떤 세력도 부정하거나 저항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2012년에는 무엇을 근거로 투표를 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선거를 할 것인가? 증오와 분노에 의한 선택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 이는 이미 MB정권에서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도 중요하다. 반MB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회를 만들지에 대한 선택이 더 중요하다. 더욱이 MB는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으며 박근혜의 집권도 정권교체로 보는 사람이 다수인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하며 그 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세력이 합당한가?’를 선택해야 한다.
최근 이런 고민들 속에서 ‘2013년 체제’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2013년 체제는 백낙청 교수가 ‘2013년 체제를 준비하자’라는 글을 “실천문학” 2011년 여름호에 실으면서 논의를 촉발시켰다. 백낙청 교수는 이 글에서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일대 전환을 이룬 것을 ‘87년 체제’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하듯이, 2013년 이후의 세상 또한 별개의 ‘체제’라 일컬을 정도로 또 한 번 크게 바꿔보자”고 주장한다. 즉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다. 2013년 체제론이 구체적인 상을 잡고 진보・개혁진형의 담론을 형성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으며 다양한 논쟁을 통해 구체화되고 또한 한국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2013년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현재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체제를 살펴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87년 체제, 제도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체제라고는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사회적 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친 97년 IMF체제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유지하는 53년 체제 등을 들 수 있겠다. 87년 체제는 결론적으로 분단체제의 영향 아래에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를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로 체제 개혁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87년 체제는 자체가 기득권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었고 자원배분이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방향이 부재하였다. 이는 청산되지 않은 보수기득권 세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재벌이 박정희식 발전국가의 유산과 신자유주의화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87년 민주화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분단이데올로그가 횡행하는, 1% 보수기득권과 재벌이 지배하는 독점과 불평등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백낙청 교수는 2013년 체제의 핵심적 아젠다로 남북평화체제, 복지국가, 공정ㆍ공평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분단체제로 발생하는 국가적 비용이나 사회적 갈등 비용 또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세력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를 생각한다면 분단 상황에서는 새로운 체제로 전환할 수 없다. 분단체제가 지속된다면 우리사회의 본질적인 전환은 불가능하다. 남북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53년에 체결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미수교, 남북경협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퇴행을 막고 일관성 있는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6.15공동선언에서 지향하는 남북연합국가로 가기 위한 노력을 남한사회가 먼저 경주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지연되고 있지만 북한의 핵문제 역시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6자회담과 북미관계의 하위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는 현재의 노력도 중요하다.
복지와 공정에 대해 우리사회에서 많은 논의가 있지만 개별 정책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의 핵심 체제요소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진보・개혁진영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어떤 정책이 보편적인 형태로 실행되느냐 하는 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복지는 모든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라는 원칙을 세우는 문제이다. 보편적 복지운동은 복지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운동이며 복지국가를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또한 생계유지도 힘든 임금을 받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등의 저임금 노동자 문제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골목까지 뻗어오는 대기업의 횡포에 쓰러지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복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장에 신호등을 달아야 한다. 시장에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는 재벌에게 빨간불을 켜야 한다. 복지를 2차적인 분배구조에 중점을 두는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기반으로 적극적이고 역동적 복지를 실시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는 복지국가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2013년 체제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적 민주화를 완성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당연히 현 집권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체제이며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관료집단과 재벌, 보수세력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2013년 체제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에 대한 구상과 대안세력의 형성, 사회적 연대와 대중 운동이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새로운 발전체제가 수립되지 않는 이상 개인적인 사양(spec) 향상은 절망과 한숨만 가득한 질주일 수밖에 없다. 1592년의 임진년만큼이나 우리역사에 큰 전환점으로 남을 2012년 임진년이 되었으면 한다. 단 420년 전보다는 긍정적이고 민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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